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어느 정도 적응한 뒤에도 혼자 구석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만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와글와글 어울려 노는데 우리 아이는 혼자 블록을 쌓고 있었거든요. 선생님께 친구 장난감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더 불안해졌습니다. 사회성이라는 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빨리 판가름 나는 건지,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몰라서 한동안 검색을 꽤 했었습니다.
발달 시기를 모르면 불필요한 걱정이 생깁니다
혹시 아이가 36개월이 되기 전인데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린다고 걱정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놓쳤던 게 있었는데, 바로 사회성 발달에도 정해진 적기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에 따르면 36개월 이전 아이들은 또래와 원활하게 어울리거나 집단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발달적으로 아직 이른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핵심은 자아 형성(Self-concept formation)입니다. 여기서 자아 형성이란 아이가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발달 과정을 말합니다. 생후 12개월 무렵부터 서서히 시작되고, 18개월을 전후해서 "싫어", "내 거야" 같은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 아이한테 "왜 친구랑 안 놀아?"라고 다그쳤던 게 많이 미안해졌습니다. 걸음마를 겨우 뗀 아이에게 달리기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오해가 있었는데,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면 사회성이 더 빨리 발달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른 또래 경험이 사회적 기술(Social skill)을 빠르게 익히는 데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사회성 자체를 앞당기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사회적 기술이란 인사하기, 차례 기다리기, 양보하기 같은 구체적인 행동 양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아이의 사회성 발달 단계를 이해할 때 핵심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시기별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2~18개월: 자아 인식 시작, "나"와 "남"을 구분하기 시작함
- 18~36개월: 자기 주장 강화, 소유 개념 형성 중, 평행 놀이(옆에서 각자 노는 형태)가 자연스러운 시기
- 36개월 이후: 협동 놀이, 규칙 이해,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달함
이 시기 구분만 알아도 아이 행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꽤 달라집니다. 저는 이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이를 다그치는 대신 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싶었습니다.
국내 아동 발달 연구에서도 만 3세 이전 아이의 또래 관계 미숙은 발달 지연의 지표가 아니라 연령에 맞는 정상 범주로 보고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자아 형성과 감정 표현이 사회성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부모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도 "기다리면 된다"는 말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시도해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을 풀어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 형성입니다. 안정 애착이란 아이가 주 양육자를 신뢰할 수 있는 안전 기지로 느끼는 심리적 유대 상태를 말합니다. 이 안정감이 바탕이 되어야 아이는 낯선 환경이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할 용기가 생깁니다. 제 경험상, 아이가 혼자 놀다가도 저를 한 번씩 돌아보는 행동이 바로 이 안전 기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때 억지로 친구들 사이에 밀어 넣으려 했던 게 오히려 역효과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유 개념과 감정 언어화입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친구 장난감을 가져왔을 때 "왜 뺏어, 안 돼"라고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건 "이건 친구 거야, 빌려 줘라고 해봐"라는 구체적인 표현 방법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전자는 행동을 막는 것이고, 후자는 대안적 표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감정 언어화(Emotional labeling)도 이 시기에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감정 언어화란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어 스스로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화가 났구나", "속상했겠다", "기쁘지?" 같은 말을 꾸준히 반복해 주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이가 자기 감정을 알아야 타인의 감정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아무리 "친구 마음 생각해" 라고 말해도 아이 입장에서는 추상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한 가지 더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아이가 또래에게 관심을 보일 때 잡아당기거나 확 끌어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걸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관심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손 잡고 싶으면 살살 잡아야지"처럼 구체적인 표현 방법을 알려줬더니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물론 "이 시기니까 다 괜찮다"라는 식으로만 보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마다 기질과 발달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반복적인 공격 행동이나 또래 관계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이 관찰된다면 발달 전문가의 세심한 평가도 필요합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도 발달 선별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을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결국 사회성은 친구를 많이 사귀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인식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천천히 배워가는 긴 과정입니다. 아이를 또래와 비교하기보다 지금 이 아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 그게 부모로서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아이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잘 자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발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가 있다면 소아청소년과 또는 발달 전문가와 상담하시기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