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한때 그렇게 막연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보다 그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역할이 하나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 모든 경험이 한꺼번에 표면 위로 올라오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이해: 내가 받은 사랑이 내가 줄 사랑의 원형이다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는 부모가 아이와 맺는 관계의 질을 설명할 때 '애착 형성(attachment formation)'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여기서 애착 형성이란, 영아가 주 양육자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심리적 유대 과정을 의미하며, 이 유대의 질이 아이의 사회성·정서 조절 능력·자존감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여러 연구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영유아 발달 자료에 따르면, 생후 36개월 이내의 안정적 애착 경험이 이후 학령기 사회적 적응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애착의 방식은, 내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다 자기가 받은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저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제 육아 초반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부모님이 저를 키우셨던 방식, 그 감정의 온도를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하고 있었거든요. 좋은 점도, 불안한 점도 함께요.
그래서 부모가 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 나는 어린 시절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았는가?
- 그 경험 중에서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반대로, 내가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저도 한번쯤 속으로 해봤습니다. 그런데 조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기준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내 부모보다 조금 더 나은 부모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어떤 분께는 위로로 들리고, 어떤 분께는 여전히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후자였습니다. 하지만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고 이해하니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자기 수용이란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결점과 한계까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심리적 태도를 말합니다. 육아는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계획대로 되는 날보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를 자책하지 않고, 부족한 나도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연습이 육아를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애착 형성과 육아 스트레스: 잘 쉬어야 잘 키울 수 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정서 조절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조절하는 심리적 기능을 뜻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정서를 그대로 흡수합니다. 부모가 만성적으로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 있으면, 아이는 세상이 원래 불안하고 차가운 곳이라고 학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육아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아이보다 제 자신이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울었고, 잠을 못 자면서 소리 내어 울기도 했습니다.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 감정이 남편에게 옮겨가더니 사소한 것들이 전부 다 싸움의 이유가 됐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육아 스트레스는 부부 관계를 통해 아이에게 다시 전달되는 구조였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결국 아이에게도 영향이 갔습니다.
그 악순환을 끊은 건 뜻밖에도 작은 자유였습니다.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잠시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몇 시간이 수십 시간의 피로를 날려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쉬는 것이 도망이 아니라 육아의 일부라는 것을요. 지금은 제가 힘들어 보이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30분이라도 저에게 쉬는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버티게 해줍니다.
조선미 교수는 아이를 키울 때 아이를 계속 주시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자립심 발달을 방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도 양육자의 소진(burnout)이 반복될 경우,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 질이 낮아지고 불안정 애착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부모가 소진되지 않는 것이 곧 아이에게 안정적인 정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예측 불가능하게 폭발하는 분노, 그리고 반복되고 지속되는 불화, 이 두 가지가 아이에게 실제로 해롭습니다. 다투더라도 화해하는 모습을 아이가 보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 모델이 됩니다. 저도 이 말을 듣고 나서, 부부 싸움 자체에 죄책감을 갖는 대신 싸운 뒤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에 더 신경 쓰게 됐습니다.
결국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완벽한 육아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자책보다 수용이, 비교보다 관계가, 정보보다 정서가 먼저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 혹은 지금 한복판에 있다면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에게 다정한가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정신건강 또는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